- 저자
- 에밀리 오스틴
- 출판
- 클레이하우스
- 출판일
- 2025.05.14
* 좋은 기회로 편집자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X(구 트위터)에 작성했던 후기를 여기에도 옮겨둡니다.
총 36번이나 괜찮기만 하다는 주인공이 있다?
1장이 15쪽부터였는데 45쪽까지만 주인공이 무려 18번이나 이런 말을 하는거야..
-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음)
- 미안해요 (전혀 미안할 상황 아님)
- 감사해요 (전혀 감사할 상황 아님)
러블리한 표지의 소설 속 주인공이 어떻게 이 짤 그잡채일수가.. 이제 이런 친구들 만나면 ‘길다’라 부르기로 나 혼자만의 다짐을 좀 했어..
기왕 세면서 시작한 김에 이후에도 길다의 ‘괜찮아요’가 얼마나 잦은지 세보면서 읽었는데 놀랍게도(?) 45쪽 이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또 다시 18번.. 그러면서 발견한 점이 나를 너무 울렸는데🥺
길다에게 ‘괜찮아요’를 건네는 유일한 사람이 여자친구인 엘리노어였다는 점이… ㅠㅜ마음 넘 좋아짐
첫 챕터는 너무 속 갑갑한 장면들만 나열이라 이거 생각보다 완독이 좀 걸리겠는데 싶었는데, 웬걸, 2장부터는 그냥 머리채 잡혀 끌려가듯 쭉쭉 읽게 됨.. 대체 길다가 또 어떤 골때리는 선택을 할까? 설마 또 거짓말 할 거야? 안돼, 안된다고, 아악! 제발! ptsd통 온다!!! 의 연속.. ㅠㅠㅋㅋㅎ미쳐
직장도 근태 문제로 잘리고, 자취방은 개판.. 그렇다고 가족에게 기대자니 모부는 너무나도 ‘정상성’에 집착함ㅠ 남들 보기에 정신나간 애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려서도, 정신나간 애들이랑 어울려서도 안된다는 모친, 가족을 상실한 고통마저 남들 눈에 들켜선 안되는 부친.. 너무 숨막히지 않냐고요..
무엇보다도 길다가 전하려는 말을 그저 말뜻 그대로라도? 들어봐주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너무 슬펐어.. 아, 가끔 남동생인 일라이와 데이팅 앱에서 만난 엘리노어랑은 대화다운 대화를 했지만.. 그마저도 타인과의 소통 특성상 타이밍이나 각자의 사정 덕에 유실되는 부분이 분명 있으니까..
무신론자 레즈비언의 ‘성원권’ 쟁탈전
누구도 길다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길다의 ‘가면’ 속을 궁금해하지 않고ㅠ 자연스럽게 또 나의 최애 비문학 『사람, 장소, 환대』를 떠올렸다.. 너무 좋은데 읽을수록 어딘가 슬퍼지는 책.
길다가 본인을 무대 위의 연기중인 배우라 생각하게 되는 건 결국 ‘성원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일까
무신론자 레즈비언인 길다의 정체성은 사회에서는 쉽게 비가시화 되는, 어찌보면 최하층의 계급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길다는 얼결에 지금 본인의 주요 정체성들을 전부 잘 숨겨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도 한 몫 했겠지.. 애초에 사회적/환경적인 요인들이 너무나도 사람들을 소진시키는 구조니까, 그 소모적인 싸움을 피하기 위해선 나를 숨기고 ‘사회’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잘 찾아서 ‘정상적인’ 모습을 연기하는 방법 뿐일테다.
먼지처럼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거나 언제나 죽음에 대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우울한 길다의 수기..? 같은 글인데도 자꾸만 소리내서 웃게 되는 건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ㅠㅋㅋ
진짜 아놔.. 하놔.. ㅠㅠ ㅋㅋㅋㅋ 이런 메모 최고 많은 책이 되어버림 얘가 또 언제 어떤 골때린 짓을 할지 예측이 안돼
그 외 완독 후 처음 든 생각:
추천사 보고 읭? 이게 가능해?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진짜 찰떡이었네
- 조용히 있지는 않을 수도?
- 거대하고 귀여운 드럼 세탁기
- 죽음과 우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소리 내서 웃을 정도로 유쾌한 책
내 주변의 ‘길다’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
실은 이 책을 한 줄만으로 누군가에게 소개해야 한다면, 모든 내용을 관통하며 아우를 수 있는 건 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362쪽)
좌충우돌 골 때린 스불재를 수집(ㅋㅋ)하는 길다가 너무 이해 안됐었는데 저런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부 단번에 이해가 됐다.
굳이 따지자면 길다는 너무나도 내가 기피하는 타입의 친구, 혹은 나와 거의 상극인 그런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몰입이 가능했던 건 이런 사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 또한 상대방을 슬프거나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선택들을 했던 순간이 많았으니까ㅠ…(한숨)
개인적으로 아예 모르고 봐야 미쳤네 (super positive) 싶은 책들이 있고, 사건사고 전부 다 알고 봐도 웃다울다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있는데 이건 명백히 후자인 거 같어 일단 여기저기 궁금해서 책 소개랑 리뷰 샅샅이 훑고 봤는데도 너무 예상못한 즐거움이 있었음 ㅋㅋㅋ ㅋㅋ 특히 내가 너무 예상못했던 즐거움은 번역 ㅋㅋㅋㅋㅋ
‘빻은 농담’ ‘암내’ ‘헐랭’ ‘쇠질’ 이런 단어들을 책에서는 처음 마주쳤는데 왜이렇게 눈에 덜거덕거리고 어색하고 웃음 터지던지 ㅠ 나연수 번역자님이 옮긴 책은 이제 다 들춰보게 생겼다고ㅠ ㅜ ㅋㅋ ㅋㅋㅋ 진짜 너무나도 길다 그잡채의 어휘 선택 ㅋㅋㅋ 주인공 캐릭이 전반적으로 점잖게 골때린(?) 느낌이 센데 번역이 정말 크게 한 몫 했다고 봐ㅠ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막판에 길다의 그간 모든 선택이 경찰의 눈에서 추궁당할 땐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는 나 이외의 모두를 오해하게 되고, 오해받게 되는 거구나 같은 메타 깨달음(?) 같은 게 오는데.. 이 지점이 요즘 무기력하고 슬픈 나에게 너무 큰 좋느를 줌… 에너지를 좀 수혈받은 느낌. 특히나 길다가 본인만큼이나 힘겹게 살아왔을 남동생 일라이에게 던진 말이.. 너무 좋았다.
“널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제발 그걸 해버려.” (365쪽)
남에게 맞추려다 나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과몰입 가능한 소설..ෆ 많관부 ෆ
―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클레이하우스, 2025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 알라딘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유쾌한 상황과 대사로 무장한 페이지터너다. 피식피식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라 있다. 빠른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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