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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서평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서평: 우리는 모두 ‘전달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by 도야 DOYA 2025. 6. 5.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사물이 상품이 되고 온갖 행위를 서비스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우리는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몰래 건네는 선물부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타인을 돕는 행위까지.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증여’의 원리를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 이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아가 우리 삶의 의미와 잃어버린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
저자
지카우치 유타
출판
다다서재
출판일
2025.05.23

 

우연히 서평단 모집 글을 마주치고 알게된 다다서재의 신간 도서!
감히 최근 읽은 비문학 도서 중 가장 깊생하게 만드는 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서평을 시작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증여’의 여러가지 의미

경제학적/일반적으로 ‘증여’는 대가 없이 재산이나 물건을 타인에게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법적으로는 증여세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고, 경제학에서는 호혜성 없는 일방적 이전으로 분류되기도 하고요. 인류학적 관점으로의 ‘증여’는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설명한 의미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가 단순히 선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고-되갚기”의 3단계 순환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증여’를 통해 인간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것이죠.

 
증여론
선물 교환에 관한 가장 체계적인 비교 연구서이며, 교환의 유형과 사회적 구조 사이의 관계를 최초로 정립한 연구서인 『증여론』의 해설서. 원시적 교환형태인 아메리카의 포틀래치와 멜라네시아의 쿨라, 뉴질랜드의 하우 등에 대한 민족지적 분석을 통해, 그는 증여(선물)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초라고 말한다.
저자
마르셀 모스
출판
한길사
출판일
2011.12.10

 

현대 사회에서도 해당 의미는 비슷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듯 한데, 요즘에는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합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의 ‘좋아요’와 ‘댓글 반사’와 같은 것도 일종의 증여 행위이고, 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무료 샘플과 사은품을 제공하는 것, 자선 기부를 하는 것도 일종의 ‘증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지카우치 유타는 책의 서문부터 아래와 같이 ‘증여’의 의미를 밝히고, 그것을 어떤 도구를 통해 설명할지 선포(?)하고 시작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김에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의 이동을 ‘증여贈與’라고 부르겠습니다.
- 9쪽, 「시작하며」
증여의 원리.
언어의 본질을 밝혀낸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두 가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 12쪽, 「시작하며」

자본주의 시대 특유의 경쟁, 돈으로 환원되는 모든 것들에 지쳐있던 저는 여기서부터 이미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토록 명료하게 목적을 밝혀둔 경우, 대다수의 책이 본문의 전개 또한 군더더기 없이 명쾌했기 때문입니다. 완독한 뒤에는 부디 제 안의 어떤 생각들이 간결하게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카우치 유타가 말하는 ‘증여’의 의미와 구조

책 전반을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건 저자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증여’되는 선물과 ‘교환’되는 상품으로 비교대조를 거듭하며 그 의미를 명징하게 정리합니다. 쉬운 말로 차근차근 펼치는 논리를 좇다 보니, 어느새 제가 받았던 ‘증여’와 ‘교환’의 순간들을 구분지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책 전반의 요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증여 (선물) 교환 (상품)
발송인이 존재하며, 수여되는 것 발송인 없이 자신의 돈과 교환하는 것
물건을 ‘물건이 아닌 것’으로 변환하는 창조적 행위
(= 고유성 O)
누구나 대가를 치르면 구입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할 뿐
(= 고유성 X)
수취인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주고 받는 관계가 생성되며, 증여에 대한 답례로 생겨난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불러일으켜 관계가 확장됨 관계의 생성과 확장을 경험하기 어려움
금방 완료되지 않고, 상대와 상관없이 이뤄지지 않는 행위 한 차례로 끝나며, 어디서나 누구와도 할 수 있는 행위
반드시 앞서 이뤄진 증여(‘전사前史’)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피증여감, 부채의식이 또 다음 증여를 불러일으킴 ‘전사前史’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피증여감, 부채의식 또한 없음
굳이 서로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전달되는 것 서로 등가교환 되는 것
돈으로 계산 불가능한 일 돈으로 계산 가능한 일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는 구조 서로를 수단으로 대하기에 신뢰가 생겨날 수 없는 구조
정성적인 가치가 행위의 동기로 작동
(사명使命, 책임, 직업윤리, 일의 보람 등)
정량적인 가치가 행위의 동기로 작동
(보상, 제재, 수지타산, 가성비 등)
수신처에 닿지 않을 가능성, 수취인이 받았다는 자각을 못 할 가능성 있음 (= 불안정성 O) 대등한 가치의 거래임을 확인한 뒤 이루어짐 (= 불안정성 X)

 

그 중 제가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바로 「3장 증여가 ‘저주’로 변할 때」의 ‘증여의 저주’ 부분이었는데요. 저자는 무언가를 증여 받고나서 “만약 내게 답례할 마음이 없거나, 답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아니면 답례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81쪽)”, 우리는 선의와 호의에 억눌려 저주에 걸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저주란, ‘사고와 행위의 영역’을 제한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 말하는 개념입니다. 한 때 무조건적인 선의와 호의를 받아 연명하던 시절, 쌓이기만 하던 부채의식 덕에 오히려 점점 연락이 불편해져 끝내 소원해져버린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자식과 모부의 관계면에서 불안을 키웠던 시절 또한 저주 개념과 이어붙이니 논리정연하게 납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때는 도통 이해할 수 없던 제 감정에 대해, 일종의 해설서를 받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악의가 아니라 선의 마저도 과하게 받으면 저주에 걸리게 되는 걸까? 더불어 지금의 제가 타인에게 자꾸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그 때의 ‘증여’를 전달하고픈 본능일까? 평소에는 쉽게 이어지지 않던 생각들이 이 책에서 설명하는 ‘증여의 논리’, ‘교환의 논리’를 통해 매끄럽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고민들을 참 많이도 쥐고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이렇게 쉽고 간결한 문장들이 그런 저의 의문을 많이 해소해주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오히려 저한테는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철학/심리학 책들보다도 더 속이 시원해지는 책이었습니다.

 

불합리성과 모순으로 이루어진 낭만

놀랍게도 책의 중반부부터는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최대 낭만(?)’마저도 잔뜩 챙겨주셨는데,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증여는 정체가 들키지 않았을 때만 올바른 증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들키지 않는 증여는 애초에 증여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어딘가에서 그것이 증여임을 ‘깨달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증여였구나, 하고 과거형으로 파악되는 증여야말로 증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증여의 수취인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 102~103쪽, 「3장 증여가 ‘저주’로 변할 때」
증여는 합리적이어서는 안 된다.
불합리한 것만이 수취인에게 증여로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타인이 건넨 증여는 필연적으로 우리 앞에 불합리한 것이 되어 나타납니다.
(…)
왜 이 사람은 내 결점을 ‘좋은 점’이라고 말하는 걸까?
이 불합리(=모순)를 합리화하여 모순 없이 이해하는 방법은 ‘그 말에 사랑이 담겨 있다.’라는 가설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미 발생한 불합리성과 모순이 그 가설 아래에서는 해소되죠.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이 그 불합리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은 오직 불합리로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저 합리적인 이유만 열개, 스무 개씩 늘어놓는 것은 사랑의 메시지에서 가장 동떨어진 말입니다.
(…) 그 특징들을 만족하는 존재라면, ‘나’를 대신할 존재는 얼마든지 있을 것만 같죠.
- 114~117쪽, 「4장 산타클로스의 정체」
증여는 발신인에게 윤리를 요구하고, 수취인에게는 지성을 요구합니다.
(…)
과거 속에 묻혀 있는 증여를 건네받을 수 있는 주체만이, 즉 증여를 깨달을 수 있는 주체만이 다시 미래를 향해 증여를 발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체는 ‘혹시 내가 깨닫지 못했다면 이 증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통절할 만큼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증여는 내게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직관적인 깨달음이 있기에 지금부터 내가 건네는 증여도 타인에게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럼에도 그가 받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죠.
(…)
이 증여는 내게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증여 역시 타인에게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언젠가 알아주면 좋겠다.
일찍이 수취인이었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주체만이 자신의 증여가 타인에게 닿기를 기원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 126~127쪽, 「4장 산타클로스의 정체」

 

마치 아날로그적 낭만, 손편지의 낭만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을 마주치고 하염없이 감탄에 젖어 있었어요. 뒤이어 저자는 증여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을 자크 데리다의 『존재론적, 우편적』의 인용문을 통해 ‘편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증여는 편지처럼 언제나 반드시 수신처에 닿는 것이 아니며, 수취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도착한 편지, 도착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편지, 읽을 수가 없었던 편지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이미 도착한 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129~131쪽) 이마저도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당황.. 여전히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낭만 기준에 덜컥 들이친 ‘증여’... 이런 단어를 낭만 리스트에 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존재론적, 우편적(바리에테 신서 18)(양장본 HardCover)
『존재론적, 우편적』은 1971년생인 아즈마 히로키가 1998년, 20대 중반에 쓴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철학연구서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팔렸다. 책은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크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인데, 이 책이 당시 일본사상계에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후반 프랑스철학의 유행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부정신학시스템을 넘어서 복수적인 초월론성으로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프로이트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
출판
b
출판일
2015.08.28

 

그 외에 서문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이후로는 유명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Sprachspiel)’ 개념과 과학사학자 토머스 새뮤얼 쿤의 ‘변칙현상anomaly(변칙성, 아노말리)’ 개념을 증여와 연결짓기도 합니다. SF 소설과 고전 문학을 통해서 본 증여까지, 정말 여러모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 좋았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도구로 어떤 하나의 개념을 다각도에서 설명하는 책은 사실 후반부에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잦은데, 이건 확실하게 굵은 가지가 잡혀 있고 잔가지도 잘 다듬어진 느낌이어서 더 좋았어요.

 

세계의 ‘빈틈’을 메워가기 위한 상상력

결국 이 책에서 제가 얻어낸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세상에도, 분명히 교환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빈틈’이 있다.
우리는 그 ‘빈틈’을 ‘증여’로, ‘상상력’으로, 착실하게 메우며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볼 수도 있다.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의 씨앗을 건네받게 된 책이었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개념을 나 나름대로 확립할 수 있었던 멋진 책!

특히나 인간의 행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기묘한 부채감으로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들, 때로는 문학이 아닌 명쾌한 비문학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렬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