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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서평

[서평] 죽은 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산 자의 이야기들

by 도야 DOYA 2025. 6. 30.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일본 서점 대상 2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야마다 후타로상을 석권하고 국내에서도 1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제노사이드』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최신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가 일본보다 앞서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다. 20여 년간 7편의 장편소설과 1편의 연작 소설집을 출간해 온 작가에게는 사실상 첫 단편집으로서의 의의를 띤 작품집으로, 미스터리에서 공포와 SF까지 아우르는 여섯 편의 수록작 중 네 편은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25.06.13

 

다카노 가즈아키는 이전에 『제노사이드』라는 장편 소설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추리 스릴러와 같은 형태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 각 인물 모두의 입장이 납득 가능할 만큼 촘촘한 개연성, 결말까지 쉼 없이 들이치는 사건 전개 등이 매우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장편 소설에서 느꼈던 가즈아키의 힘을 단편 소설집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과연 짧은 분량의 단편들에서도 그만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우려들은 고작 첫 단편을 읽은 뒤 말끔하게 사라졌다. 오히려 단편이기에 가능한 속도감과 몰입감이 첫 단편부터 돋보였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에는 총 6개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네 번째로 등장한 「아마기 산장」.
이야기는 신문기자인 '하야미 쇼지'가, 부동산업자로 전직한 중학교 동창 '기지마 노리유키'로부터 아마기산에 위치한 기묘한 산장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시작된다. 

“유령 저택이라고 했으니 매우 흉흉한 사건이 산장에서 벌어졌던 게 틀림없어. [……] 과거에 이 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령 저택이 된 유래를 조사해 주겠어?” (186~187쪽)

비일상적인 상황을 완전히 일상처럼 몰입하게 만든 설정. 관련 장소를 찾아가고, 사람들을 탐문하는 신문 기자 하야미를 쫓으며 나도 모르게 단서를 모으고 추리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독자를 단숨에 아마기산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영리함(?)에 매우 감탄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유령 저택, 다섯의 실종자, '죽은 자가 유령이 되는 조건'이라는 표제의 문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들을 파악하며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 자체도 오싹했지만, 무엇보다도 다 읽은 뒤 공포의 대상으로 남은 건 '인간' 그 자체였다. 인간들이 바글거리는 세상, 삶과 죽음 사이를 가득 메우는 광기같은 것들.

미쳐버린 인간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참사의 전모도, 그것을 초래했던 광기의 총량도 헤아려 보지 않은 채 인간 세상은 다음 그다음 계속해서 나아가다가 언젠가는 또 같은 곳으로 되돌아간다. (220쪽)

책의 목차대로 「발소리」,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세 번째 남자」 순서로 누적된 '인간에 대한 공포심'이 「아마기 산장」으로 절정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 덕에 나머지 「두 개의 총구」, 「제로」는 임팩트가 크지 않고 아쉬웠지만 곳곳에서 돋보이는 인류에 대한 통찰들이 기억에 남는다.

무수히 쏟아지는 단편소설집(앤솔로지) 사이에서, 이렇게 모든 단편의 짜임새가 훌륭한 책은 만나기가 쉽지 않기에 더 반가운 책이었다.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